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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의 노크] 김선호 바둑감독 "'신의 한 수:귀수편', 영화 전문가들과 만난 것만으로도 행복"

기사입력 2019.11.30 13:00 / 기사수정 2019.11.30 01:17


[김유진의 노크]는 영화계 안팎에서 힘을 보태고 있는 숨은 일꾼들과 함께 나눈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하는 엑스포츠뉴스의 고정 코너입니다. [편집자주]

열세 번째 주인공은 프로기사 김선호 3단입니다. 영화 '신의 한 수:귀수편(이하 '귀수편')'(감독 리건)에는 바둑감독이라는 독특한 역할이 존재합니다. 바둑을 소재로 하고 있는 만큼, 스크린 속의 생생한 바둑 표현을 위해 실제 프로기사와 함께 했습니다. 김선호 3단은 2014년 개봉한 '신의 한 수'에 이어 이번 '신의 한 수:귀수편'에서도 바둑 자문을 맡아 활약하며 작품에 디테일에 힘을 보탰습니다. 바둑감독으로 당당히 엔딩크레딧에 이름을 올린 것도 물론입니다.


[엑스포츠뉴스 김유진 기자] '신의 한 수:귀수편'이 꾸준히 상영 중이던 11월 중순, 엄숙함이 감도는 한국기원에서 마주한 김선호 3단은 바둑인이지만 바둑 쪽이 아닌 분야에서 인터뷰를 요청받아 응하게 된 것도 신기하다며 "영화 이야기를 많이 해야겠다"고 연신 쑥스러움을 드러냈다.

11월 7일 개봉한 '신의 한 수:귀수편'은 '신의 한 수' 스핀오프로, 당시 언급됐던 귀수라는 인물의 15년 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84년에 태어나 6살에 바둑을 시작한 김선호 3단은 2001년 지역연구생 입단대회를 통과하며 프로의 길에 들어섰다. "바둑을 정말 딱 30년 전에 시작했다"며 웃어 보인 김선호 3단은 "어느덧 프로가 된 지도 20년 가까이가 됐는데, 영화에 참여해 바둑에 관련된 일을 한다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남다른 마음을 전했다.

"1편에서는 제 역할이 그렇게 큰 것을 정말 모르고 했었는데, '귀수편'에서는 한 번 경험이 있다 보니 조금은 더 편해진 부분이 있었다. 이번 영화에서는 전체가 75회차 정도라고 한다면 거의 65~70회차는 현장에 갔었다. 조금이라도 바둑과 관련된 장면이 다 있었기 때문이다"라는 김선호 3단에게 "준 영화인이라고 불려도 되겠다"는 너스레를 던지자 "워낙 영화를 좋아해왔다. 현장에서도 연출부와 거의 똑같은 생활을 했는데, 실제 영화 현장에서도 막내 연출부 정도로는 일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으쓱하며 '귀수편'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사실 바둑감독이라는 표현이 워낙 생소하게 들리긴 해요.(웃음) '신의 한 수:귀수편'은 지난 해 9월부터 올해 1월까지 촬영을 했었고요.

"바둑 자문의 역할이었죠. 보통 축구나 농구 같은 스포츠에서 많이 자문을 구하곤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다면 당연히 사전 미팅도 하고 현장에서 직접 도움을 주기도 하겠지만 바둑은 아예 그렇게까지 한다고 생각조차 못하고, 또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요. 거의 연출부랑 똑같은 생활, 일을 한 것이거든요. '신의 한 수'때와 같은 제작사의 황근하 대표님과 이번에도 같이 할 수 있었어요. 영화 일이 엄청 힘들잖아요. 제 경우에는 외부인이 마치 용병 같은 역할로 현장에 간 것이기도 하고요.

사실 제가 어느 곳에 가서도 이 이야기는 하는 편이지만, 바둑기사들의 일상생활과 패턴, 마인드 같은 성향과 영화 촬영 현장은 거의 상극이거든요, 정말 안 맞아요.(웃음) 1편 때는 저도 그런 부분에서 조금 힘든 점이 있었는데 황 대표님이 많이 챙겨주셔서 '신의 한 수' 이후에도 좋은 형, 동생으로 잘 지내고 있었죠. '신의 한 수'가 마무리되고 1년 정도 후에 '귀수편' 이야기를 알게 됐고, 리건 감독님에게도 인사드렸던 것이 벌써 4년 전이네요. 그 때부터도 감독님과 바둑에 관련된 얘기를 계속 나누면서 지금 '귀수편'까지 오게 된 것이에요."

-'신의 한 수' 바둑 자문 후 인터뷰에서 그 부분을 얘기하기도 했었죠. 당시 김인권 씨가 연기를 위해 바둑판을 밟고 서는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었다고요.

"그 때는 저도 워낙 보수적인 마음을 갖고 있을 때라…(웃음). 영화적 허용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을 그 때 느끼게 된 것이죠. 익숙해지니, 그래서 이번 작업이 조금 더 편했던 점도 있었고요. 이번 영화에서 귀수가 기사 100명과 체육관에서 다면기 바둑으로 대결하는 장면도 사실은 판타지인 것이잖아요. 이것도 영화적 허용에서 볼 때는 우리가 판타지물에서 주인공이 거침없이 모두를 이기는 모습을 보는 것처럼,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 부분이에요. 물론 제 생각의 변화도 그렇게 되기까지가 오래 걸렸지만요.(웃음)"

-바둑을 오랫동안 해왔지만, 또 바둑을 가르친다는 것은 다른 부분이지 않을까요.

"다행히 '신의 한 수'때의 경험이 있어서, 바둑이 영화적으로 표현이 돼야 할 때 어떤 것부터 해야 될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있었죠. 제가 실제로 가르치는 것에는 자신이 있기도 하고요.(웃음) 제가 바둑을 30년 동안 뒀는데, 바둑 자체를 가르치긴 했어도 바둑돌을 잘 놓는 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더 신기하면서도 재미있는 부분이더라고요. 단순히 바둑돌만 놓는 것이 아니라, 돌과 돌 사이에 어떻게 놓아야 하는지, 또 바둑과 관련된 제스처들이 있거든요. 그런 부분까지 디테일하게 봐야 했던 것이죠. 일단 돌을 어색하지 않게 잘 놓는 것이 중요했기에, 그 부분을 강조해서 배우 분들과도 같이 연습을 했었어요. 실제 촬영 때도 감독님이 OK를 하셨는데 제가 보기에 조금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 싶으면 감독님께 다시 말씀드렸고, 그 부분을 수긍해주시면 다시 촬영하는 그런 형식으로 진행됐었죠."

-어떻게 보면 캐스팅이 된 배우들보다 일찌감치 '귀수편'의 진행을 봐 온 셈이에요. 어떤 배우들이 이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소화하게 될 지 많이 궁금했을 것 같고요.

"궁금했죠. 다른 배우들도 마찬가지지만, 실제로도 권상우 배우를 엄청 좋아했거든요.(웃음) 이 배우들이 바둑돌을 잡았을 때 어떤 느낌을 내야 할지, 그 느낌을 잘 표현할 수 있게끔 제가 도움을 줘야 했어요. 어설프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중요했고요. 배우 분들이 촬영 몇 달 전부터 개인이든, 그룹이든 시간 될 때마다 열심히 연습하셔서 화면에도 잘 담긴 것 같아요. 황덕용 역의 정인겸 배우님 집에는 직접 찾아가서 바둑 연습을 했고, 그 이후에도 많은 얘기를 나누면서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었어요. 일적으로 만난 사이지만, 이렇게 인간적인 관계를 조금 더 쌓을 수 있던 것도 뿌듯한 부분이었죠. 사실 배우 분들께도 연락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워낙 다들 바쁘시다보니 혹시나 부담스러우실까봐…(웃음). 조심하게 되더라고요."


-바둑을 두는 모습이 전문가의 시선으로 보면 다 뜻이 있는 것이겠지만,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죠. 어떤 부분이 가장 중요하게 보였으면 했나요.

"'바둑이 표현됨에 있어서는 거짓이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바둑을 알든 모르든, 감정과 연기, 바둑돌을 놓는 손을 통해서 누가 지금 상황에서 유리한 것인지 보여주는 장면들을 많이 찍었죠. 200수에서 끝난다고 하면 처음에 10수, 50수, 100수, 150수, 200수까지 이런 식으로 시나리오에 없어도 웬만하면 다 그렇게 찍어놓았어요. 실제 촬영한 장면들은 더 많았다는 것이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제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기보(한 판의 바둑을 두어 나간 기록)를 만들었다는 것이거든요. 준비한 기보만 200판이 넘는데, 바둑 기보를 만든 것은 90%가 제 창작물이기도 하고 나머지는 한국기원에서 많이 도와줘서 그대로 쓰는 경우도 있긴 했었어요. 캐릭터들의 실력과 상황, 성격을 고려해서 만들었던 것이죠.

귀수 캐릭터만 봐도, 저희는 거의 귀수가 알파고와 동급이라고 설정했었어요. 작가님, 대표님, PD님 모두 다요. 제가 약간의 조언은 드릴 수 있지만, 연출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당연히 실례이기 때문에 그 정도 선에서 같이 얘기를 나눴었고요. 장성무당과의 대결에서도, 장성무당이 귀수를 홀리는 말을 하며 "집은 의미가 없어, 지키려 하지마"라고 흔들죠. 일색바둑인데, 그 때 사실 귀수가 약간 실수를 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배우들의 대사와 표정에서 나오는 상황들이 바둑판에서도 똑같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면 쉬울 것이에요. 이렇게 볼 때, 바둑을 알고 보면 더 재밌는 것은 맞지만 모르고 봐도 괜찮다고 봐요.(웃음)"

-앞서 말한 것처럼 영화에서 사활 바둑(귀수·권상우), 관전 바둑(똥선생·김희원), 맹기 바둑(허일도·김성균), 판돈 바둑(부산잡초·허성태), 사석 바둑(외톨이·우도환) 그리고 신들린 바둑(장성무당·원현준)까지 다양한 캐릭터와 바둑의 형태가 나오죠. 그들이 바둑을 하는 모습들에는 모두 김선호 3단의 자문이 들어갔을 것이고요.

"다들 재미있게 바둑을 연습하고 배워주셔서 감사했어요. 영화사 사무실에 바둑판을 가져다놓고 오목을 두든 실제 바둑을 두든 계속 두면서 연습하시는 것이죠.(웃음) 바둑판을 들고 카페에도 가서 스케줄이 겹치면 (박)상훈이(귀수 아역)도 같이 두고 그랬었고요. 시나리오를 보면서 바둑 콘티를 미리 다 만들어놨었거든요. 배우들에게도 '이 상황에서는 이렇게 대사를 하고, 바둑돌을 이렇게 놓으시면 됩니다. 그 때의 감정은 이렇고요'라는 조언을 해드리는 것이죠. 그 이유가, 연기를 아무리 잘하더라도 바둑돌을 어디에 놓아야 할지 숙지가 안 되면 동공이 흔들릴 수가 있잖아요. 그럼 그것이 카메라 안에서 다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연습을 했는데, 현장에서는 정말 다들 잘 외우셔서 거의 NG가 안 났을 정도로, 집중력 있게 해주셨어요."

-'신의 한 수'때는 정우성의 손 대역을 하기도 했었어요. '귀수편'에서도 손 대역으로 연기한 부분이 있나요.

"있는데, 많지는 않아요.(웃음) '귀수편' 예고편에서 귀수가 눈을 감고 있다가 손 부분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게 제 손이긴 해요.(웃음) 손 대역을 하려면 손 모양도 비슷해야 하는데, 영광스럽게도 '신의 한 수' 때는 정우성 배우와 정말 손이 똑같이 생긴 것이에요.(웃음) 보는 분들도 놀랄 정도로 똑같아서, 정우성 배우의 대역은 제가 다 했었죠."



-바둑을 둔다는 것은 정말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바둑을 잘 두는 사람들을 보면 '머리가 좋다'는 선입견 아닌 선입견이 들기도 하더라고요.(웃음)

"정말 바둑만 하고 사니까요.(웃음) 제가 어디 가서 직접 머리가 좋다고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그 이야기에는 약간 동의가 되기도 하네요.(웃음) 실제로도 머리 쓰는 것을 좋아해요."

-한 분야에서 10년만 해도 전문가가 된다는데, 30년간 바둑만 해왔다는 이야기는 다시 들어도 신기해요.

"아버지가 바둑을 시키신 것인데, 어릴 때는 아버지의 바둑을 가르치려는 아버지의 강압적인 모습이 사실 기억에 많이 남아있어요. 그 시대 아버님들이 지금보다는 가부장적인, 그런 느낌들이 좀 있으시잖아요. 아버지는 제가 12살 때 돌아가셨거든요. 프로가 되는 것만 보고 떠나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죠. 그렇게 프로가 되고나서는 2년 정도 후에 잠시 바둑계를 떠나있었어요. 아마 이건 저희 동료들도 모르는 내용일 수 있을 것이에요. 바둑프로기사가 되려면, 프로가 될 때까지 바둑을 공부하는 양이 고3 수험생과 똑같다고 보시면 돼요. 다른 사회생활을 경험하거나 친구를 만나거나 놀거나 그럴 수가 없죠. 요즘은 좀 더 편해졌다고는 하는데, 저는 그랬었거든요. 너무 한평생 바둑만 하고 살아왔으니까, 이렇게 살다가는 '정말 다른 것 하나 경험해보지 못하고 바둑만 하다가 죽을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스무 살 무렵이었죠.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이 너무 싫었어요."

-그럼 잠시 바둑계를 떠나 있을 동안 어떻게 지냈었나요.

"이것저것 해봤죠. 일반적인 아르바이트들을 경험하면서 간접적으로 사회생활도 경험해보려고 하고, 랩과 마술도 했었어요. 제 내면에 그래도 흥이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바둑은 정적인 부분이 크니) 감추고 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웃음) 아, 그래서 '귀수편'을 보면 재미있는 대사가 있어요. 똥선생이 바닷가에서 돈을 세다가 귀수에게 '너는 나 만나기 전에 사회생활 같은 것 안 해 봤냐?'라는 말을 하는데, (보수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바둑인들의 모습을 약간 빗대서 표현한 부분도 있죠.(웃음)"

-김선호 3단에게 '신의 한 수: 귀수편'은 어떤 의미로 남게 될까요.

"제게 어떤 의미로 남는다기보다는, 사실 바둑인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으며 하거든요. 바둑이라는 소재 자체를 이렇게밖에 활용할 수 없는 것이 지금 상업영화의 현실인데, (바둑계 분들은) 아직 그것을 모르시는 것 같아요. 간단히 정리해보면, 바둑인들은 영화 속에서 바둑을 두는 장면이 나오기를 원하는 것인데 사실 그러면 누가 돈을 내고 그 장면을 보겠어요. 저는 지금 시점에서는 상업영화라는 틀로 바둑을 이렇게 ('귀수편'에서처럼) 표현하고 보여주는 것이 거의 최고치라고 생각해요. 영화를 통해 바둑인들을 포함해서 일반인들에게도 바둑이라는 자체가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갔으면 좋겠고, 바둑인들도 너무 비판적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진짜 바둑영화가 나오기 위한 발판으로 생각해주면 어떨까 싶죠. '귀수편'같은 영화가 잘돼야 진짜 바둑인들이 원하는 좋은 소재의 바둑영화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봐요."

-'신의 한 수' 때도 그렇고, '귀수편'에서도 엔딩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간 순간은 앞으로도 잊지 못하겠네요.(웃음)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갈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영광이었어요. 제 이름이 올라갔지만, 실제로 같이 도와준 동료들이 있거든요.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한국기원도 마찬가지고요. '귀수편'을 처음 편집할 때부터 마지막까지도 바둑과 관련된 장면에 대해서는 신민경 편집기사님과 같이 보며 얘기를 나눴었는데, 제가 원래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좋아하지만 이 계기로 인연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는 것이 참 좋았죠. 신민경 편집기사님도 최고의 편집기사님인데 이렇게 만날 수 있었던 것이잖아요.(웃음) 이렇게 다른 직업의 전문가들을 만나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뜻 깊었던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작사 대표님, 감독님, 배우 분들까지 새로운 분야의 전문가들을 알아가는 자체만으로도 제겐 정말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웃음)"

slowlife@xportsnews.com / 사진 = 엑스포츠뉴스 윤다희 기자, CJ엔터테인먼트

김유진 기자 slowlife@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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