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와 ‘가짜사나이’와 디지털 화전

기사입력 2020.10.16 오전 11:20



불을 발견한 이후 엄청난 문명의 발전을 이룬 인류.

그래서 그런지 인터넷으로도 뭔가를 태우면서 삶을 영위하는 중이다.

타오르는 존재는 대체로 유명인, 태우는 존재는 대체로 이슈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슈 유튜버들이 급성장하면서 사이버렉카라는 기가 막힌 표현이 등장했다. 차량 사고 나면 어디서든 날아오는 렉카처럼 사고 생겼을 때 사고 난 사람을 끌고 가버린다는 것. 언론과 기자는 ‘원조 사이버렉카’라고 표현하는 네티즌들도 봤다.

이 표현도 참 절묘한 표현이라고 생각하는데, 이슈로 밥 먹고 사는 여러 개인 중 한명으로서, 요즘 계속 머릿속에 계속 화전이라는 단어가 맴돈다.

숲에 불을 질러서 그 땅에 농사를 짓는 걸 화전이라고 하는데, 현대 이슈 관련 종사자들이 딱 디지털 화전민이라는 생각이 든다. 




화전(그중 유랑화전농업)의 큰 특징은 크게 세 가지다. 숲 같은 곳에 불을 지른다는 것, 재가 남은 자리에 농사를 짓는다는 것, 지력이 다하면 다른 화전 후보지로 떠난다는 것.

이슈가 되는 존재A 등장→디지털 화전민들 화전 시작→먹을 거 다 떨어지면 이슈 소재 B로 이동.

어떤가. 대충 비슷해 보이지 않는가.

이 비유가 그럭저럭 납득 할 만하다고 여긴다면, 이 글의 제목에 설리가 들어간 이유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4일은 설리의 1주기였다. 이에 인터넷에선 설리 추모 물결이 줄을 이었다.

설리가 먼 곳을 간 이후 기사 제목, 커뮤니티 제목들은 참 아름답디 아름다웠다. 이따금 설리를 부정적인 방식으로 다룬 곳도 있었지만 바로 철퇴를 맞았다.

하지만 정작 살아 있을 때 설리에 대한 대접이 지금처럼 좋았냐고 하면 그렇지는 못했다.

‘다 탈 때까지 태우면 사람은 재가 된다. 물리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신적으로도 그렇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해준 것이 설리의 죽음이었다. 절친인 구하라까지 비슷한 이유로 세상을 뜨면서 연예뉴스 댓글도 막히고, 각 기획사의 악플러 대응도 강경해졌지만 디지털 화전 자체는 오히려 더 성장 중이다.



<MBC의 설리 다큐가 엄청난 비판을 받았던 이유도 시청자들과 네티즌들이 직감적으로 “이건 ‘추모’가 아니라 ‘화전’이다”라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디지털 화전 대상 중에서 최고라 할 만한 곳은 단연 ‘가짜사나이’와 피지컬갤러리라 할 것이다.

물론 단순히 화전으로 치부하기 어려울 정도로 비판 받을 행동을 한 사람도 있고, 사람에 따라선 비판적인 자세를 취할 만한 장면들도 있었다.




하지만 과연 정확하게 ‘잘못의 크기’만큼 ‘가짜사나이’ 관련자들이 맞고 있는가. 이것은 좀 생각해볼 제인 듯싶다.

물론 딱 정확하게 때려 맞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제 최고 이슈였던 ‘이슈유튜버’ 정배우의 로건 몸캠 유출 문제처럼 존중 받고 보호 받아야 할 부분까지 화전의 대상으로 삼는 일도 분명히 존재했다.



<정배우가 자신의 몸캠을 유출한 건에 대한 로건 측의 입장문>

‘가짜사나이’ 뿐만 아니라 화제성 있는 유명인에게 불이 붙었을 때, 재빨리 ‘화전’하려고 불화살도 쏘고, 폭탄도 던지고, 불 잘 붙으라고 파초선도 휘두르는 모습 올해에도 종종 볼 수 있었다.

당장 유튜브계 뒷광고 논란 터졌을 때를 돌이켜서 한번 생각해보자.

이 이슈에 ‘쯔양’이라는 이름이 보였을 때 이슈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지.

엄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 위해 숙고하면서 이슈를 다뤘는가.

아니면 재빨리 쯔양이라는 키워드를 최대한 빨리 소화하고, 가능하다면 불의 크기도 크게 키워서 ‘내가’ 따뜻해지려고 했는가.



<‘언론 원조 사이버렉카설’이 나오게 만들었던 SBS 등 주요 방송국의 쯔양 보도>

일각에서 정의하는 뒷광고 유튜버는 분명 아니었던 쯔양. 하지만 그 짧은 시간에 순식간에 타올라 재가 됐고, 유튜버로서 은퇴했다.

이 글은 ‘아주 고고하고 현명하고 구름 위에 존재하는 기자님이신 나’로서 쓴 글이 아니다. 기자도 결함이 있는 인간이고 어쨌든 이슈로 먹고 사는 사람이니까. ‘너도 다를 거 없는 인간이잖아’라고 하면 딱히 할 말 없는 것이 사실.

그저 너, 나, 우리가 ‘이러고 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은 좀 필요한 듯해 이 글을 썼다.

‘최소한의 자각 없이 앞으로도 쭈욱 디지털 화전민으로서 최선을 다해 산다면, 너 나 우리는 후일 어떤 괴물이 되어 있을 것인가’

‘아니면 이미 지금 아주 모범적이고 훌륭한 괴물인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됐다는 이야기다.

tvX 이정범 기자 leejb@xportsnews.com / 사진 = 픽사베이-가짜사나이-SBS-MBC-로건 유튜브 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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