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차별 영상 삭제하라"...日, 유튜브 시민 운동 돌풍

기사입력 2018.06.04 오전 11:32



혐한 영상으로 들끓던 유튜브가 정화되고 있다. 일본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유튜브에서 인종차별 영상을 몰아내자'고 나선 것이다. 시행 2년을 맞은 '증오 연설(헤이트 스피치) 방지법'과도 무관하지 않다.

지난달 15일부터 일본 최대 커뮤니티 사이트 5ch(5채널·과거 2ch) 이용자들은, '유튜브의 넷 우익(극우 성향의 네티즌) 영상을 신고해 없애자'는 운동을 시작했다. 일본인이 올린 인종 차별적 영상 중 유튜브 규정에 어긋나는 것을 신고해 삭제되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 운동으로 인해 이번 달 4일까지 104개의 유튜브 채널이 폐쇄되고, 20만411개의 영상이 사라졌다.

그 결과 유튜브에 한국과 관련된 검색을 하면 어김없이 나타나던 혐한(嫌韓) 영상들이 잘 보이지 않게 됐다. 그동안 유튜브에는 넷우익이라 불리는 세력이 유튜브에 혐한 영상을 지속적으로 올려왔다. 재일교포에 대한 차별, 한국에 대한 유언비어 등이 주 내용이었다. 일본에 불리한 일만 생기면 '재일 한국인 소행'이라며 근거 없는 소문을 확산하기도 했다. 지난달 니가타시에서 있었던 7세 여아 살인사건의 용의자가 체포되자, 유튜브에는 그가 재일 한국인이라고 주장하는 영상이 어김없이 올라왔다. 

일본 네티즌들이 '넷 우익 영상' 삭제 운동을 펼친 이유는 이용자가 많은 인터넷 사이트마다 정치적 게시물을 도배하다시피 올리는 넷우익의 행태 때문이었다. 넷우익은 유튜브 뿐 아니라 야후재팬(일본 1위 포털 사이트), 위키피디아 등 이용자가 많은 사이트에 집중적으로 글과 댓글을 올려왔다. 상당수의 일본 네티즌들은 우익 네티즌의 도배로 인해 정상적인 의견 교환에 방해를 받고 있었고, 이에 대해 피로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 4월, 5ch에서 활동하던 한 우익 블로그의 주도로, 일본도쿄변호사회 소속 변호사 사사키 료(佐佐木亮)와 기타 가네히토(北周士) 변호사에게 960건의 부당한 징계 청구서가 날아든 사건이 발생했다. 일본 매체들에 따르면 현재 두 변호사는 보조금 관련 성명을 발표한 적도 없었으며, 960명의 징계 청구서와 관련해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해당 블로그 운영자에게 형사 책임을 물을지도 검토 중이다.



▲일본 문부성의 '증오 연설 방지법' 홍보 영상 중 한 장면

당시 5ch내에서는 넷우익이 정치적 선동 글을 올리는 문제로 이용자들의 감정이 상한 상태였고, 결국 5ch 이용자들이 유튜브에서 넷우익을 몰아내자는 운동까지 벌이게 된다. 먼저 행동에 나선 것은 5ch 내 스포츠·연예 게시판 이용자들이었고, 뉴스 게시판 이용자들도 가세했다. 곧이어 트위터에도 이 운동이 전파되며 점점 힘을 얻었다.

처음 이 운동을 시작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의도는 정치와 무관하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증오 연설 방지법을 통해 운동에 당위성을 부여했다.

증오 연설 방지법이란 일본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는 특정 인종·민족이나 그 후손에 대한 차별의식을 조장할 목적으로 생명·신체에 위해를 가하겠다고 알리거나 모욕하는 등의 행위를 '헤이트 스피치'로 규정하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그 해소를 위한 책임과 노력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한는 법으로, 2016년 6월 3일 일본에서 시행됐다. 

'넷우익 영상 삭제 운동'을 일으킨 이들은 운동의 개시 이유와 진행 과정 등을 영상으로 정리해 29일 유튜브에 올렸다. 영상은 2년 전 일본 국회에서 증오 연설 방지법이 제정된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다음은 영상에 담긴 글 첫머리다.

"정부의 강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유튜브에는 증오 영상이 넘쳐나고 있다. 가령 일본 유튜브에서 '한국'으로 검색하면 표시되는 영상은 자극적으로 눈에 띄게 한 섬네일에 인터넷을 떠도는 내용을 그대로 복사해 사진에 자막만 뜨는 독자성 없는 것들이 많다. 그중 다수는 인종차별이나 악질 유언비어를 포함하고 있다. 덧붙여 한국 유튜브에서 '일본'을 검색하면 비슷한 영상은 한 건도 보이지 않았다"

이들은 유튜브의 정책을 이용해 문제 되는 영상들을 삭제했다. 유튜브는 '증오심 표현에 대한 정책'으로 "인종·민족의 일부 특성을 문제 삼아 적개심을 일으키는 목적의 콘텐츠 업로드는 사이트 정책 위반"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때문에 이 정책을 위반한 것이 분명한 영상은, 신고를 받았을 경우 삭제됐다. 또한 영상이 3개 삭제된 채널은 폐쇄(ban) 조치가 내려졌다.



▲사진=유튜브 '넷우익 영상 삭제 운동' 소개 영상 중 한 장면

일본 네티즌들의 신고가 계속되면서, '넷우익 영상 삭제 운동'에 관해 정리된 위키 사이트에 따르면 4일까지 104개의 유튜브 채널이 폐쇄되고, 14만854개의 영상이 삭제됐다. 5만9557개의 영상이 비공개 상태로 전환됐다. 유튜브에서 사라진 인종차별·혐한 영상 수는 20만 개가 넘었다.

극우 정당 '일본제일당' 채널, 우파 정치평론가 다케다 츠네야스 채널 등 '거물'들의 유튜브 채널도 이번 운동으로 폐쇄됐다. 일본제일당 채널은 '재일 특권을 허용하지 않는 시민회'의 설립자인 사쿠라이 마코토가 운영하는 채널이기도 하다. 또한, 구독자 45만 명을 보유한 한 인기 유튜버는 한국을 비방했던 영상들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이번 운동으로 채널을 잃은 다케다 츠네야스는 트위터를 통해 "좌익 활동가들에게 저격당해 채널이 폐쇄됐다. 언론을 지키는 싸움을 하겠다. 좌파 활동가들의 비겁한 수법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시다"라며 분개했다.

반면 일본의 우익 연구가인 스가노 다모트는 트위터로 "추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인종차별주의자나 넷우익에 대해, 귀를 막고 입을 다물며 '무시가 제일'이라 말하는 사이, 일본은 모리모토 사건(아베 총리가 국유지를 측근이 운영하는 모리모토 학원에 헐값에 넘겨주는 특혜를 주려 한 사건)이 일어나는 나라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번 '넷우익 영상 삭제 운동'만으로 일본이 혐한과 차별주의에서 벗어났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넷우익에 대한 반감이 다수의 행동으로 이어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사뭇 크다. 이런 움직임이 잠깐에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백종모 기자 phanta@dailysmart.co.kr / 기사제공=스마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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